90년대 최고의 아이돌 그룹 젝스키스 (데뷔, 해체 그리고 재결합)

Posted by Drunken [Y]
2017. 9. 6. 22:25 카테고리 없음

1990년대에 HOT의 양대산맥인 그룹은 누가 뭐라해도 젝스키스가 아닐까 생각한다. 물론, 젝스키스의 짧은 활동 뒤로는 HOT의 같은 기획사인 신화, JYP의 조상인 GOD가 있어 HOT와의 대결구도는 이어져 나가긴 했다. 하지만, 전성기시절 HOT와 젝스키스는 음악적 색깔이 비슷하였으며, 그 팬수도 어마어마 하였다. 먼저 젝스키스의 그룹명인 젝스키스(독일어: SECHSKIES)는 대한민국의 5인조 아이돌 보이 그룹이다. 젝스키스는 독일어로 "6개의 수정"을 뜻한다. 1997년 4월 15일 쇼 뮤직탱크 〈학원별곡〉으로 데뷔하였다. 당시 대성기획(현 DSP미디어) 소속으로 활동하였다. 그때 당시 개인적인 느낌은 전사의 후예와 너무 비슷한 음악 색깔로 데뷔를 하였기 때문에, 금방 없어질 그룹이라고 생각을 하였지만, 그렇지 않았으며, 엄청난 팬덤을 불러 일으켰다. 당시 여중생, 여고생은 HOT파와 젝키파로 나뉠 정도였으니 말이다.

97년도에 데뷔를 하여, 2000년도까지 3년간 활동을 하였지만, 쉴세 없이 앨범을 발매 하며, 수 많은 인기곡을 만들었다. 먼저 데뷔곡인 학원별곡을 비롯 하여, 같은 앨범의 수록곡인 폼생폼사와 연정, 배신감, 기억해줄래 모두를 히트 시키며 바로 다음 앨범을 준비하였으며, 그 다음 앨범 2집에서는 기사도를 비롯하여, 말광량이 길들이기등을 히트시키며 승승장구 하였다. 그 다음 앨범인 3집에서도 로드파이터와 무모한 사랑, 3.5집에서는 커플 , 너를 보내며를 히트시키며 공식적인 마지막 앨범인 4집에서는 컴백, 뫼비우스의 띠, 예감을 히트시키는데 이르렀다. 젝스키스도 HOT와 마찬가지로 해체에 있어서는 속설이 엄청 많았던 그룹이다. 생각해보면, 이때 당시에 활동했던 모든 그룹들의 해체는 뭔가 의심쩍게 이루어진건 분명한 사실이다. 당시에는 지금과 같이 체계가 안잡혀있다고 하기는 한다. 따라서, 노예계약이라는 말 자체도 이때쯤부터 나온걸로 기억이 난다. 하여튼, 젝스키스도 이런 이야기들이 엄청 많이 떠돌았던 그룹중 하나이다. 추후 젝스키스의 리더인 은지원은 모방송 인터뷰에서 그저, 박수칠때 떠나자라는 뉘앙스의 말을 먼저 하였다고 전했다.하지만, 다른 멤버들은 추후 방송에서 밝힌 해체이유는 모두 다 달랐다. 회사에서도 불만도 많았도 전했다. 여기서 놀라운 사실 하나가 얼마전 방송에서 밝혀지게 되었는데 젝스키스의 멤버인 이재진은 해체가 싫어, 한달여 잠수를 탔다고 전해졌다. 그래서 해체 시점이 한달정도 딜레이되었다고 전했으며. 이 이야기는 같은 멤버들도 모두 몰랐던 듯 싶었다. 결국 2000년 해체를 하고, 은지원은 솔로로 데뷔를 하여 많은 예능에서 활동을 하였으며, 강성훈도 솔로 활동을 하였지만, 예능에서는 찾아볼수 없었으며, 어느 순간부터는 잘 보이지는 않았다. 이재진도 솔로활동을 하였으며,김재덕,장수원은 제이워크라는 그룹을 만들어 활동을 하였다. 고지용은 해체이후로는 방송에서는 볼 수가 없었다. 그렇게 젝스키스는 다 달리 흩어져 각자의 위치에서 활동 하는 듯 보였으나, 무한도전을 통해 고지용을 제외한 모두가 한자리에서 콘서트를 진행하였으며, 이를 계기로 하여 16년만에 재결합을 하여, 기존 기획사인 DSP가 아닌 YG로 둥지를 옮겨 현재 활동중이다. 젝스키스의 재결합으로 인해, 흔히들 말하는 조상돌이 다시 재결합 이야기가 나오고 있다. 하지만, 이미 세월이 많이 흘렀기에, 그룹의 멤버들의 마음이 하나로 뭉쳐지기는 힘들것 같다. 그런면에서 보면은 젝스키스는 대단하다. 해체했을 당시의 모든 상황들은 당사자들만이 알 것이며, 굳이 우리가 알 필요는 없다고 생각 한다. 지금 이렇게 대중들 앞에 다시 나타나 노래를 불러주고 있으니, 말이다. 하나 아쉬운것은 젝스키스의 멤버인 고지용은 현재 직업때문에 함께 하지는 못했다고 전해졌지만, 가끔 예능프로에는 나오는것으로 보여진다. 젝스키스의 재결합으로 인하여 HOT의 재결합 이야기가 가장 많이 나왔으며, 남자그룹으로 HOT와 젝스키스가 있었다면, 각 같은 기획사였던 SES와 핑클의 재결합 이야기도 많이 나왔다. 그러던중 SES가 데뷔 20주년 콘서트를 전멤버 참여하여 진행 하였는데 재결합이 되는것이 아니냐라는 말이 나왔지만, 그 이후 뭐 이렇다할 활동은 없다. 하지만 각 위치에서 다들 너무 열심히 살고 있기 때문에 멋져 보이긴한다. 이제 나이가 다들 한두살이 아니기때문에 음반 하나 내려고 해도 좀 오래들 걸리나 보다.

다시 원문으로 돌아와서, 젝스키스 흥 했으면 좋겠다.


90년대 최고의 아이돌 그룹 HOT (해체이후 각 멤버별 활동)

Posted by Drunken [Y]
2017. 9. 6. 03:00 카테고리 없음


저번에 이어 이번에도 HOT를 포스팅 해본다. 다시 생각을 해봐도 HOT는 한 시대를 풍미 할 만큼의 뛰어난 그룹임이 분명한거 같다. 서태지와아이들의 뒤를 이은 비슷하지만, 완전히 다른 색깔을 가진 대형기획사에서 만들어낸 첫 창작물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해체이후 멤버별 활동및 주요사건을 알아보도록 하겠다. 먼저, HOT의 리더인 문희준이다. 문희준은 해체이후 솔로음반을 락을 가지고 대중앞에 나타났으며, 그 이후로 많은 안티팬을 갖게되었다. 문희준에 대한 안티 행위에는 문희준의 음악 실력에 대한 비판도 있었지만, 대개 외모나 와전된 발언을 비하하는 인신 공격 수준의 단순한 비난이었다. 그들은 은어로 10대 열성 소녀팬들을 비하하기 위해 속칭 빠순이라 지칭하였으며, 문희준을 무뇌충(無腦蟲)으로 부르기도 했다. 이때 만들어진 빠순이라는 은어는 지금까지 사용되고 있으며 심지어 연예 뉴스에서도 자주 찾아볼 수 있는 단어가 되었다.디시인사이드나 웃긴대학과 같은 커뮤니티 웹사이트에서 속칭 필수요소가 된 문희준을 희화화한 합성사진과 유행어들이 끊임없이 폭발적으로 만들어졌다. 그의 노래 가사 중의 일부를 따온, 뷁과 같은 부정적인 속어도 유행하였다.한 웹사이트에서 주최한 《2003 최악의 딴따라 워스트 어워드》에서 “최악의 가수 부문” 및 무려 네 개 부문에 후보로 오를 정도로 가수 문희준에 대한 안티 행위는 특히 2002년 무렵부터 집요해졌다. 안티들의 기세에 힘입어 김구라는 자신이 진행하는 인터넷 방송에서 문희준에게 인신공격이 포함된 심한 욕설을 퍼붓기도 하였다. 그의 발언들은 이른바 ‘문희준 어록’이라 불리며 인터넷을 통해 급속도로 퍼졌다. 하지만, 그 내용중 대부분은 문희준을 의도적으로 비하하기 위해 만들어낸 허위사실이 대부분이며 안티들이 지적하는 이른바 ‘건방진’ 언행들은 대부분 신문 기사나 네티즌들의 입을 통해 전파되면서 지나치게 과장된 내용이 대부분이며, 일부는 팬들의 웹상에서의 말 실수를 문희준의 말 실수로 오해한 내용이 많았다. 대표적으로 무려 100만 여건의 악플이 달린 네이버 뉴스의 댓글은 국내 뉴스 댓글중 기네스에 오르며 안티계의 최고봉으로 정점에 이른다.이러한 안티들의 행동은 문희준이 2007년 11월 20일에 현역 만기 제대한 이후 대부분 사그라들었다.후에, 김구라는 '문희준은 보살'이란 말과 함께 문희준에게 과거 인터넷 방송에서 자신이 퍼부었던 인신공격들에 대한 사죄의 뜻을 밝혔다.그 이후에 꾸준한 방송 활동을 하며, 안티가 많았던 그때를 회상하며, 각종 예능에 많이 출연을 하였으며, 근래에는 크레용팝의 멤버 소율양과 결혼을 하여, 잘 살고 있는것으로 보여진다. 그다음은 HOT의 장우혁이다.  장우혁은 해체 이후 jtL을 거쳐 2005년 솔로 가수로 전향했다. 댄스계의 전설이라 불릴 만큼 최고의 춤꾼으로 각광받던 그가 아이돌 스타의 이미지를 탈피, 강한 남자로의 변신을 꾀한 솔로 1집 《No More Drama》은 지지 않는 태양, Flip Reverse, Red Sun 등 다수의 곡을 히트시키며 성공적인 홀로서기라는 평가를 얻어냈다. 또한 WH CREATIVE 대표, 댄스스쿨 뉴웨스트를 운영하고 있다. 역시 춤꾼은 춤꾼이였나보다. 하지만, 장우혁은 활동때 이후에는 방송활동이 거즘 없어, 팬들이 많이 궁금해 하는 멤버중 한명이다.  다음 멤버인 강타는 자신만의 솔로앨범을 내어서 2001년 <북극성>으로 솔로활동을 시작하여, <스물 셋>으로 활동을 이어감.

2002년 2집 Pine Tree, 2003년 1st Concert Pinetree, 2003년 S 1집 Fr.in.Cl., 2005년 3집 Persona, 2006년 강타 & 바네스 Scandal, 2008년 4 집Eternity - 영원 등의 앨범 발매. 2003년에는 프로젝트 그룹 S의 멤버로, 2006년에는 그룹 강타 앤 바네스로 활동하였다. 또한 H.O.T 3 《빛》의 작사작곡 등 작업활동을 시작으로 현재까지 프로듀서로써의 역할도 수행하면서 활발한 활동. 프로듀서로서 강타는 솔로앨범을 통해 자신만의 발라드를 만들어갔으며, S와 강타&바네스 앨범에서는 좀 더 새로운 음악세계를 펼쳐나가려고 노력하였다. 특히 Eternity는 지금까지의 자신의 발라드 세계속에서 가장 편하게 들을 수 있는 선율로 집약하여 앨범을 만들었다고 하였다.

2010년 2월 19일 8 사단 수색대대에서 2년 간의 병역 의무를 마치고 전역하였다. 또한 강타는 현재는 SM엔터테인먼트에 이사로 활동중이다. 다음 멤버는 토니는, jtL 활동을 거쳐 2004년 10월, 1집 앨범《Believe》을 발매하며 솔로로 데뷔했다.〈사랑은 가질 수 없을 때 더 아름답다〉,〈유추프라카치아〉등 감성적인 댄스곡들과 상상플러스 등의 예능프로그램을 통해 큰 사랑을 받으며 솔로가수로 자리매김했다. 또한 2004년부터 티엔 엔터테인먼트와 교복 회사 스쿨룩스 등의 사업을 하여 큰 성공을 거두었다. 2001년에 미국 영주권을 포기한 후, 2008년 11월 4일 충청남도 논산시 연무읍 육군훈련소에 현역으로 입대해 부산 53사단으로 자대배치를 받았으나 서울 용산 국방홍보지원대로 차출되어 국군방송에서 〈토니안의 주고 싶은 마음 듣고 싶은 얘기〉, 〈일 플러스 성공〉등 DJ와 MC로 활약하다가 2010년 9월 14일에 만기 제대했다. 제대 후에도 20세기 미소년 등의 방송으로 주목을 받았다. 현재 김재덕과 함께 설립한 티엔네이션 엔터테인먼트의 대표이자 가수 겸 방송인으로 활약하고 있다. 지금 현재는 미운우리새끼라는 SBS 예능 방송에 출연을 하며, 인지도가 많이 올라간 상태이다.

마지막 멤버인 이재원은 jtL을 거쳐 솔로 활동을 하였다. 대표 곡으로 'l'm so hot', 'No Pain, No Gain' 등이 있다. 하지만, 5멤버중 HOT당시 가장 인지도도 낮았기 때문인지는 몰라도 솔로 활동도 크게 성공을 못하였으며, 방송에서도 거의 찾아 볼수가 없다.

이로서 HOT의 데뷔때부터 해체, 각 멤버별 활동까지 훑어 보았는데, 솔직히 지금의 모습들 보다는 예전 그때 그모습들이 정말 보기 좋은거 같다.



90년대 최고의 아이돌 그룹 HOT (데뷔에서 해체까지)

Posted by Drunken [Y]
2017. 9. 5. 23:37 카테고리 없음


1990년대에 가장 핫한 아이돌 그룹은 뭐니뭐니 해도 HOT가 아닐까 싶다. H.O.T.(에이치오티)는 1990년대 말부터 2000년대 초까지 SM 엔터테인먼트 소속으로 활동했었던 대한민국의 남성 5인조 보이 댄스 그룹이다. 이후에 등장한 S.E.S ,젝스키스, 베이비복스, god, 핑클, 신화, NRG, 태사자, 클릭비 등과 함께 한국 아이돌 그룹의 전성기를 이끌었다.  H.O.T.는 "High-five Of Teenagers". 곧 "십대들의 승리"를 의미한다. 대표곡으로는 데뷔곡인 〈전사의 후예〉를 포함해, 〈캔디〉, 〈늑대와 양〉, 〈행복〉, 〈we are the Future〉, 〈열맞춰!〉, 〈빛〉, 〈아이야!〉, 〈투지〉, 〈환희〉, 〈Outside Castle〉, 〈for 연가〉, 〈그래 그렇게〉 등이 있다. H.O.T.는 한동안 가수와 MC로 활약했던 SM 기획(현 SM 엔터테인먼트) 대표 이수만이 현진영과 한동준, 유영진에 이어 탄생시킨 가수 그룹이다. 그들의 노래는 랩, 백스트리트 보이스식의 발라드, 댄스, 그리고 1999년에 시도했던 오케스트라를 가미한 록까지 그 장르의 폭이 넓었다. 5명의 고교생인 강타, 문희준, 이재원, 토니안, 장우혁을 기획사에서 철저한 계획에 맞춰 준비시켰다. 그룹에 참여하게 된 첫 번째 멤버는 롯데월드 매표소 근처에서 방황하고 있던 안칠현(강타)이었다. 회사 매니저가 그의 춤과 노래실력을 보고 깊은 인상을 받아 멤버가 될 것을 제의했다. 두 번째는 회사 자체 오디션을 통해 뽑히게 된 문희준이었다. 문희준은 그의 친한 동생 이재원을 오디션에 참가시켰고, 이재원 역시 오디션을 통과했다. 이후 네 번째로 참여하게 된 멤버는 장우혁이다. 서울에서 열린 댄스컨테스트에서 1등을 한 그에게 멤버 제의가 들어왔고, 그가 승락함으로써 계약이 체결되었다. 마지막으로 합류한 멤버는 토니안이다. 미국에서 이수만이 일대일 오디션으로 그의 노래와 댄스를 본 후 그를 한국으로 데려왔다. HOT의 데뷔는 1996년 9월 7일 1집 앨범 발표와 TV 첫출연 이후 H.O.T는 〈전사의 후예 (폭력시대)〉와 〈Candy〉가 히트하면서 엄청난 인기를 얻으면서 동시에 스타덤에 오르면서 10대의 우상이 되기 시작했다. 그들은 1999년 9월 18일 서울 올림픽 주경기장에서 대한민국 가수 최초로 콘서트를 하였다.또한 서울 올림픽 주경기장에서 열린 2001년 2월 그들의 마지막 콘서트 티켓 예매 때에는 예매 시작 10분 만에 5만여 표가 전부 매진되는 사건이 벌어지기도 했다. 실제로 H.O.T. 공연이 열리는 날이면 주변 교통이 순식간에 마비되는 일들이 많았으며, 그들의 마지막 콘서트가 열렸던 2001년 2월 27일에는 서울 지하철이 새벽 2시까지 연장 운행했으며, 선착순으로 좌석 배정이 되었던 이 콘서트에서 열정적인 팬들은 콘서트 시작 며칠 전부터 좋은 자리를 잡기 위해 주경기장 앞에서 단체로 노숙하기도 했다. 그들은 가수로서뿐만 아니라 하나의 상표로서의 가치를 지니고 있었다. 그들은 실제로 음료수, 스티커, 책, 향수, 인형, 팬티, 심지어는 DNA목걸이 등 거의 모든 상품에 그들의 캐릭터를 이용해 부가가치를 올리는 데 성공하였다.이를 두고 “가수를 지나치게 상업적으로 이용한다.”라고 지적하는 안티들의 비판도 있었다. 1997년 CCTV 채널1에서 방영된 드라마 《사랑은 뭐길래》 이후 일어난 한류 열풍은 H.O.T., 클론 등 가수의 인기까지 더해져 더욱 커다란 반향을 일으켰으며, 특히 H.O.T의 베이징 공연은 중국 청소년 사이에 “H.O.T.패션 무조건 따라하기” 풍조를 가져왔을 만큼 폭발적인 반향을 일으켰다. 그들은 한국 대중문화에 대한 국외의 관심을 넓히는 데 일조했는데, 특히 그들의 노래에 담긴 메시지는 중국 청소년에게 큰 문화적 충격을 주었다. 현실에 대한 불만과 사회에 대한 비판의식, 특히 청소년 문제를 정면으로 다루는 가사 내용에 중국 청소년은 크게 공감했다고 한다. 그러던 HOT는 2001년 5월 강타와 문희준은 SM 엔터테인먼트와 재계약을 맺었으나, 장우혁을 비롯한 이재원, 토니안이 소속사를 옮기면서 멤버들의 SM 엔터테인먼트와의 계약 만료가 임박한 시점에서 인세 문제를 비롯한 여러 사안이 한꺼번에 터져나오며 해체설이 나돌기 시작한 것으로 추정되며, 인세 문제 등의 각종 루머가 원인이라 짐작되지만, 해체의 정확한 이유는 아직까지도 밝혀지지 않고 있다. 분명한 것은 당시 문희준, 강타 등 SM에 남게된 멤버와 토니안, 이재원, 장우혁 등 SM을 떠나게 된 멤버의 해체 사유와 SM회사에 대한 말이 각각 다르다는 사실이다.

H.O.T.가 5집까지 활동하리란 것은 암묵적으로 예정되었다는 주장도 있다. 소속사의 대표이사인 이수만은 모 여성지와의 인터뷰에서 이런 사실을 언급했다 ‘문희준·강타 솔로설’로 파문을 일으킨 사건 역시 그의 계획 중 일부라고 주장한다. 강타, 문희준을 제외한 장우혁, 토니안, 이재원 세 멤버는 SM에서 일방적인 해체통보를 받았다. 강타와 문희준은 SM 엔터테인먼트와 재계약을 선언하며 솔로 앨범을 발표해 꽤 성공적인 결과를 얻었다. 강타는 주로 소울과 R&B를 중심으로 음악 활동을 시작했고, 문희준은 처음에는 강타와 비슷한 R&B로 출발했으나, 1집 앨범 중반 이후에는 록음악에 도전하며 4개의 정규 앨범을 발매하며 경력을 쌓아나갔다. 문희준은 그의 아이돌 스타 이미지에 가려 싱글 활동 초 날카로운 비판과 악성 루머에 시달렸으나, 제대 후 꾸준한 활동으로 다시금 인기를 얻고있다.SM 엔터테인먼트에서 나온 장우혁, 토니안, 이재원은 프로젝트 그룹 jtL을 결성했으나, 한동안 전 기획사의 보이콧에 시달리며, 공중파·케이블 음악 방송에 한동안 출연하지 못했으며,그 해 2001년 통산 음반 판매량 2위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각종 가요 시상식에 참가조차 못하는 수모를 겪기도 했다. 그러나 그들은 세 장의 정규 앨범과 콘서트 앨범을 내며 성공적인 활동을 했다. 또 2003 MTV ASIA AWARD 에 한국 대표로 참석해 ‘한국 최고 인기 아티스트상’을 받기도 했다(2002년에는 강타가 수상).jtL 이후 세 명은 각각 솔로 앨범을 내어, 모든 멤버가 개별 활동을 하게 된다. 장우혁은 그가 이끄는 댄스 아카데미 “Newest”를 설립하고 운영했는데,이 역시 SM 엔터테인먼트의 직간접적 보이콧으로 어려움을 겪었으며 토니안 역시 솔로 활동 초반에 보이콧으로 인해 활동에 어려움을 겪었다.

이로서 90년대 최고의 아이돌 그룹 HOT의 데뷔에 해체까지 알아보았다. 다음 포스팅에서는 해체이후의 각 멤버별 활동을 알아보도록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