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0년대 최고의 아이돌 그룹 HOT (데뷔에서 해체까지)

Posted by Drunken [Y]
2017. 9. 5. 23:37 카테고리 없음


1990년대에 가장 핫한 아이돌 그룹은 뭐니뭐니 해도 HOT가 아닐까 싶다. H.O.T.(에이치오티)는 1990년대 말부터 2000년대 초까지 SM 엔터테인먼트 소속으로 활동했었던 대한민국의 남성 5인조 보이 댄스 그룹이다. 이후에 등장한 S.E.S ,젝스키스, 베이비복스, god, 핑클, 신화, NRG, 태사자, 클릭비 등과 함께 한국 아이돌 그룹의 전성기를 이끌었다.  H.O.T.는 "High-five Of Teenagers". 곧 "십대들의 승리"를 의미한다. 대표곡으로는 데뷔곡인 〈전사의 후예〉를 포함해, 〈캔디〉, 〈늑대와 양〉, 〈행복〉, 〈we are the Future〉, 〈열맞춰!〉, 〈빛〉, 〈아이야!〉, 〈투지〉, 〈환희〉, 〈Outside Castle〉, 〈for 연가〉, 〈그래 그렇게〉 등이 있다. H.O.T.는 한동안 가수와 MC로 활약했던 SM 기획(현 SM 엔터테인먼트) 대표 이수만이 현진영과 한동준, 유영진에 이어 탄생시킨 가수 그룹이다. 그들의 노래는 랩, 백스트리트 보이스식의 발라드, 댄스, 그리고 1999년에 시도했던 오케스트라를 가미한 록까지 그 장르의 폭이 넓었다. 5명의 고교생인 강타, 문희준, 이재원, 토니안, 장우혁을 기획사에서 철저한 계획에 맞춰 준비시켰다. 그룹에 참여하게 된 첫 번째 멤버는 롯데월드 매표소 근처에서 방황하고 있던 안칠현(강타)이었다. 회사 매니저가 그의 춤과 노래실력을 보고 깊은 인상을 받아 멤버가 될 것을 제의했다. 두 번째는 회사 자체 오디션을 통해 뽑히게 된 문희준이었다. 문희준은 그의 친한 동생 이재원을 오디션에 참가시켰고, 이재원 역시 오디션을 통과했다. 이후 네 번째로 참여하게 된 멤버는 장우혁이다. 서울에서 열린 댄스컨테스트에서 1등을 한 그에게 멤버 제의가 들어왔고, 그가 승락함으로써 계약이 체결되었다. 마지막으로 합류한 멤버는 토니안이다. 미국에서 이수만이 일대일 오디션으로 그의 노래와 댄스를 본 후 그를 한국으로 데려왔다. HOT의 데뷔는 1996년 9월 7일 1집 앨범 발표와 TV 첫출연 이후 H.O.T는 〈전사의 후예 (폭력시대)〉와 〈Candy〉가 히트하면서 엄청난 인기를 얻으면서 동시에 스타덤에 오르면서 10대의 우상이 되기 시작했다. 그들은 1999년 9월 18일 서울 올림픽 주경기장에서 대한민국 가수 최초로 콘서트를 하였다.또한 서울 올림픽 주경기장에서 열린 2001년 2월 그들의 마지막 콘서트 티켓 예매 때에는 예매 시작 10분 만에 5만여 표가 전부 매진되는 사건이 벌어지기도 했다. 실제로 H.O.T. 공연이 열리는 날이면 주변 교통이 순식간에 마비되는 일들이 많았으며, 그들의 마지막 콘서트가 열렸던 2001년 2월 27일에는 서울 지하철이 새벽 2시까지 연장 운행했으며, 선착순으로 좌석 배정이 되었던 이 콘서트에서 열정적인 팬들은 콘서트 시작 며칠 전부터 좋은 자리를 잡기 위해 주경기장 앞에서 단체로 노숙하기도 했다. 그들은 가수로서뿐만 아니라 하나의 상표로서의 가치를 지니고 있었다. 그들은 실제로 음료수, 스티커, 책, 향수, 인형, 팬티, 심지어는 DNA목걸이 등 거의 모든 상품에 그들의 캐릭터를 이용해 부가가치를 올리는 데 성공하였다.이를 두고 “가수를 지나치게 상업적으로 이용한다.”라고 지적하는 안티들의 비판도 있었다. 1997년 CCTV 채널1에서 방영된 드라마 《사랑은 뭐길래》 이후 일어난 한류 열풍은 H.O.T., 클론 등 가수의 인기까지 더해져 더욱 커다란 반향을 일으켰으며, 특히 H.O.T의 베이징 공연은 중국 청소년 사이에 “H.O.T.패션 무조건 따라하기” 풍조를 가져왔을 만큼 폭발적인 반향을 일으켰다. 그들은 한국 대중문화에 대한 국외의 관심을 넓히는 데 일조했는데, 특히 그들의 노래에 담긴 메시지는 중국 청소년에게 큰 문화적 충격을 주었다. 현실에 대한 불만과 사회에 대한 비판의식, 특히 청소년 문제를 정면으로 다루는 가사 내용에 중국 청소년은 크게 공감했다고 한다. 그러던 HOT는 2001년 5월 강타와 문희준은 SM 엔터테인먼트와 재계약을 맺었으나, 장우혁을 비롯한 이재원, 토니안이 소속사를 옮기면서 멤버들의 SM 엔터테인먼트와의 계약 만료가 임박한 시점에서 인세 문제를 비롯한 여러 사안이 한꺼번에 터져나오며 해체설이 나돌기 시작한 것으로 추정되며, 인세 문제 등의 각종 루머가 원인이라 짐작되지만, 해체의 정확한 이유는 아직까지도 밝혀지지 않고 있다. 분명한 것은 당시 문희준, 강타 등 SM에 남게된 멤버와 토니안, 이재원, 장우혁 등 SM을 떠나게 된 멤버의 해체 사유와 SM회사에 대한 말이 각각 다르다는 사실이다.

H.O.T.가 5집까지 활동하리란 것은 암묵적으로 예정되었다는 주장도 있다. 소속사의 대표이사인 이수만은 모 여성지와의 인터뷰에서 이런 사실을 언급했다 ‘문희준·강타 솔로설’로 파문을 일으킨 사건 역시 그의 계획 중 일부라고 주장한다. 강타, 문희준을 제외한 장우혁, 토니안, 이재원 세 멤버는 SM에서 일방적인 해체통보를 받았다. 강타와 문희준은 SM 엔터테인먼트와 재계약을 선언하며 솔로 앨범을 발표해 꽤 성공적인 결과를 얻었다. 강타는 주로 소울과 R&B를 중심으로 음악 활동을 시작했고, 문희준은 처음에는 강타와 비슷한 R&B로 출발했으나, 1집 앨범 중반 이후에는 록음악에 도전하며 4개의 정규 앨범을 발매하며 경력을 쌓아나갔다. 문희준은 그의 아이돌 스타 이미지에 가려 싱글 활동 초 날카로운 비판과 악성 루머에 시달렸으나, 제대 후 꾸준한 활동으로 다시금 인기를 얻고있다.SM 엔터테인먼트에서 나온 장우혁, 토니안, 이재원은 프로젝트 그룹 jtL을 결성했으나, 한동안 전 기획사의 보이콧에 시달리며, 공중파·케이블 음악 방송에 한동안 출연하지 못했으며,그 해 2001년 통산 음반 판매량 2위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각종 가요 시상식에 참가조차 못하는 수모를 겪기도 했다. 그러나 그들은 세 장의 정규 앨범과 콘서트 앨범을 내며 성공적인 활동을 했다. 또 2003 MTV ASIA AWARD 에 한국 대표로 참석해 ‘한국 최고 인기 아티스트상’을 받기도 했다(2002년에는 강타가 수상).jtL 이후 세 명은 각각 솔로 앨범을 내어, 모든 멤버가 개별 활동을 하게 된다. 장우혁은 그가 이끄는 댄스 아카데미 “Newest”를 설립하고 운영했는데,이 역시 SM 엔터테인먼트의 직간접적 보이콧으로 어려움을 겪었으며 토니안 역시 솔로 활동 초반에 보이콧으로 인해 활동에 어려움을 겪었다.

이로서 90년대 최고의 아이돌 그룹 HOT의 데뷔에 해체까지 알아보았다. 다음 포스팅에서는 해체이후의 각 멤버별 활동을 알아보도록 하겠다.